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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 Global Bridge

GPPS Pride GyeongBuk

October 2018 Vol 47


아르헨티나
페소-달러 환율이 급등한 8월 29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다운타운. 시민들이 환전소의 페소-달러 환율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출처 나시온)

달러를 공용화폐로? 아르헨티나 이미 이중화폐 사용국!

날씨정보처럼 환율 챙겨보는 국민

최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공유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동영상이 있다. 지금은 폐지된 한 TV프로그램의 해외 인터뷰 장면이다. 2011년 브라질 상파울로를 찾아간 아르헨티나 기자는 행인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오늘의 환율을 묻는다. 대답은 한결 같았다. "기억나지 않는데요" "모르겠어요" "여기에선 헤알화(브라질의 화폐 단위)를 씁니다. 달러는 존재하지 않아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답변이지만 시청자 대부분은 인터뷰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환율을 모르고 어떻게 산다는 거야?" 이렇게 반문한 시청자도 꽤 많았을 것 같다. 아르헨티나에서 페소-달러 환율은 날씨정보처럼 오전에 꼭 챙겨봐야 할 필수 정보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페소-달러 환율이 변화무쌍할 때는 특히 그렇다. 환율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간 땅을 치며 통곡을 해야 하는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달 30일은 아르헨티나 국민이 아침부터 패닉에 빠진 날이다. 전날 34페소로 마감한 페소-달러 환율이 외환시장 개장과 함께 41페소로 껑충 뛰면서다. 동포들도 카카오톡 단체방에 암달러상이 올린 환율을 보고 경악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환율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45%에서 60%로 올리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국민은 틈만 나면 뉴스를 확인하며 종일 페소-달러 환율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르헨티나 뉴스전문채널들은 정치, 사회, 사건사고 등 섹션별 보도를 아예 포기하고 종일 환율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마치 '환율 특집'을 보는 듯했다. 주요 일간지 인터넷판 마다 환율 기사로 도배된 건 물론이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이중화폐 국가

사실 아르헨티나는 달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아니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수입총액은 전년보다 19.7% 늘어난 669억 달러였다. 수입은 20%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국내총생산의 13% 규모에 불과했다. 해외에서 필요한 재화를 수입하는 데 막대한 달러를 써야 하는 국가는 아니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는 달러가 없어도 없는 대로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국가다.
아르헨티나에선 은행에 자유롭게 외환(달러)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중앙은행의 통계자료를 보면 9월 현재 외환(달러)예금총액은 269억 달러다. 칠레나 우루과이, 페루 등 다른 남미국가와 비교해도 달러예금이 유난히 많은 편은 아니다.
경제 규모에 비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유별나게 달러 저축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라면 아르헨티나 국민은 왜 환율에 그토록 예민한 것일까. 아무리 경제에 문외한이라도 아르헨티나에서 산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바로 안다. 경제가 사실상 달러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권에서 부동산은 모두 달러로 거래된다. 페소화로 호가가 붙은 매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즉시 언론에 달러로 환산한 금액이 기사화된다. 10년 전엔 최저임금이 달러로 얼마였는데 지금은 달러로 얼마이고, 앞으론 얼마가 된다는 식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립대학 산하 경제정책연구소는 최근 재밌는 보고서를 냈다. 남미 주요 국가의 경제 달러화 비율을 비교했더니 아르헨티나 경제의 달러화 비율이 70%로 우루과이와 함께 남미에서 최고였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페루(44%), 칠레(11%) 등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사실 아르헨티나 국민의 주요 저축수단도 달러다. 2001년 금융위기 때 예금동결 등의 악몽을 겪은 아르헨티나 국민은 은행을 믿지 않는다. 여윳돈을 은행계좌에 넣어두기보다는 달러로 바꿔 직접 보관하는 게 가장 일반적인 저축 방식이다. 이렇게 모은 돈을 침대 밑에 보관한다고 하여 아르헨티나에는 이른바 '침대 밑 달러'라는 말이 있다. 물론 대여금고 등에 국민이 보관하고 있는 돈(저축)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정확한 추정은 어렵지만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이렇게 금융권 밖에서 국민이 보관하고 있는 돈이 최소한 4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보유고에 맞먹는 금액이다.
이렇다 보니 아르헨티나는 이미 경제를 달러화한 나라는 말도 나온다. 아르헨티나가 페소와 달러 등 2개 화폐를 혼용하는 이중화폐 사용국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경제전문가는 없다.

남다른 달러 사랑의 이유

아르헨티나 국민의 남다른 달러 사랑엔 역사적 뿌리가 깊다. 경제와 페소화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원인이다. 돌이켜 보면 과거 달러에 대한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가치는 폭락하기 일쑤였다.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페소화는 믿지 못할 돈이라는 관념이 깊게 뿌리를 내렸다. 페소화는 하루하루 생활경제에서 쓰는 돈, 달러는 저축하는 돈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시간이 흐르면서 진리처럼 굳어졌다.
"당장 쓸 곳이 없어도 남는 돈이 있다면 일단 달러로 환전!" 이건 아르헨티나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기 위해선 몸으로 익혀야 할 기본기다.
아르헨티나의 공용화폐인 페소화가 나름 국민적 신뢰를 산 때가 잠깐 있긴 했다. 1대1 고정 환율을 근간으로 한 페그제가 시행된 1991~2001년이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페그제가 깨지면서 '혹시나?' 했던 국민은 '역시나!"라면서 페소화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페그제의 부활?

최근 아르헨티나에선 페그제 부활 가능성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불을 지핀 건 백악관이다. 래리 커들러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최근 자국 TV와의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에 새로운 페그제가 시행될 가능성이 매우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페그제는 이미 지난 199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효과를 봤던 제도"라며 "미 재무부가 (아르헨티나의 페그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아르헨티나가 지금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페그제 도입뿐이라는 말까지 했다.
아르헨티나 언론에 인터뷰 내용이 보도되자 사회는 크게 술렁였다. 이에 앞서 "아르헨티나가 페소화를 포기하고 공용화폐로 달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의 칼럼이 소개되면서 경제달러화의 가능성을 놓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때 커들러 위원장의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페그제 도입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과도 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아직은 잔불이 꺼지지 않은 상태다. 국민들 중에선 페그제를 선호하는 비율이 꽤나 높아 보인다. 환율이 고정되면 적어도 지난달 29일처럼 충격을 받는 일은 없을 게 아니냐는 판단에서다. 환율이 고정되면 우선 물가도 안정되고 달러벌이(저축)도 쉬워져 환영할 만한 제도라고 반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선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1990년대 페그제의 폐단을 경험하고도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해야 하겠냐는 게 반론의 요지다. 페그제를 둘러싼 논란이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경북pride상품 아르헨티나 해외시장 조사원
손영식